신의 손끝에서 창조된 '최초의 인간'…미켈란젤로의 붓끝으로 완성되다

입력 2023-04-27 18:05   수정 2023-04-29 18:45

“손의 진화는 뇌용량의 급속한 팽창을 이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부분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국 신경생리학자 프랭크 윌슨의 논문 ‘더 핸드(The Hand)’에 실린 글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간의 손동작은 뇌를 자극해 추상적 사고, 인식과 분석, 창의성 등 두뇌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의 특성이 언어의 근원이자 지능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학자들의 이론에 부응하는 작품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1475~1564)의 걸작 ‘아담의 창조’다. 이 그림은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로마 바티칸궁전 시스티나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의 한 장면이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를 받아 4년(1508~1512년)에 걸쳐 완성한 웅장한 천장화에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지창조’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아담의 창조’는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27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그림의 구성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아담과 하느님은 불균형한 사선 구도에 의해 좌우(땅과 하늘)로 분리돼 배치됐고 외모와 동작, 자세도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아담은 누드인데 신은 옷을 입었고 아담은 젊은 남자인데 신은 백발의 노인이다. 아담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지상에 있지만 신은 중력의 법칙을 초월해 공중에 떠 있다. 아담의 몸은 오목한 형태이고 수동적 자세를 취한 데 비해 신의 몸은 볼록한 형태이고 능동적 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반된 요소들은 아담이 비록 하느님과 똑같은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신과 인간은 집게손가락이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배치됐다. 두 검지가 서로를 향해 쭉 뻗으며 마주치기 직전의 순간을 묘사한 부분이 전체 화면의 초점이 돼 감상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성서에서는 신이 아담을 흙으로 만들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이 태어났다고 적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성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신과 아담의 검지가 맞닿아 생명이 창조되는 파격적인 장면을 선택했다. 두 집게손가락은 거의 닿을 듯하지만 실은 닿지 않았다.

이 강렬한 이미지는 수많은 학자의 관심을 끌었고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는 연구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영국 미술사학자 윌리엄 본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인 이 부분은 육체적, 영적 에너지의 전달에 대한 은유가 됐고 거의 전기 자력의 함축을 가진다”고 했다.

영국 예술사가 이에인 잭젝은 “하나의 시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부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전류처럼 흐르는 생명의 섬광이 창조주로부터 피조물로 전해지는 듯하다”고 해석했다.

미켈란젤로는 신의 에너지가 집게손가락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돼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는 천재적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찬송가 ‘베니크레아토르 스피리투스’(라틴어로 ‘창조주의 영광스러운 영혼이여 오소서’라는 뜻)에 실린 “하느님의 오른손가락인 성령이 아담에게 말의 선물을 건네준다”는 노래 구절에서 최초의 개념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생명과 함께 지능도 선물로 줬으며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처럼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존재라는 미켈란젤로의 자부심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추론의 근거로 미켈란젤로가 쓴 소네트에 나오는 “예술가의 지성이 최고도로 발휘돼 창작의 구상을 마친 다음에야 그의 솜씨 있는 손에 붓을 들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구절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 그림의 주제와 상징적 이미지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려는 흥미로운 의학 연구서들도 ‘아담의 창조’가 불후의 명성을 누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90년 미국 산부인과 의사 프랭크 메시버거는 ‘신경해부학에 기초한 미켈란젤로의 아담 창조에 대한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신과 주변의 천사들을 에워싼 붉은 색 형태가 인간 두개골의 횡단면을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발표했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논의된 작품 중 하나인 ‘아담의 창조’는 예술계를 비롯해 현대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1982)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손가락이 맞닿는 명장면은 그림 속 구도와 자세가 비슷하다. 이 영화는 신과 아담의 검지를 차용해 서로 다른 종족인 인간과 외계인의 우정과 연대,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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